높은 연봉의 프로그래머와 스타트업
우수한 프로그래머에게 그 수준에 합당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도의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프로그래머는 고급 기술자와 하급 기술자 간에 수십배에 달하는 막대한 생산성의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업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사람인 SW분야에서, 바로 그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다소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뛰어난 프로그래머를 쓰는 것이 이득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기업의 생리가,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달라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성공적인 한국 스타트업들의 경우, 소수의 인원들이 소위 말해 ‘쫄쫄 굶어가며’ 서비스를 개발했다는 류의 이야기만이 회자되곤 한다. 나 또한 주변에서 스타트업들이 높은 급여를 주며 개발자를 고용한 경우를 여러번 보았는데, 그 고용이 성공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사실 그 프로그래머는 그다지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과격한 주장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 개발자에게 높은 금액을 지불한 기업들은 그 인물의 실력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히 기업이 바보가 아닌 이상 능력없는 개발자에게 큰 돈을 지급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 스타트업들에게서 발생했고,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이러한 고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그 이유가 숨어 있다.
우선 ‘스타트업’의 입장을 살펴보자.
통상적인 스타트업들은 핵심 멤버들이 founder가 되어 상당한 양의 주식이나 스톡 옵션의 형태로 인센티브를 얻는다. 주주가 되는 시점에서, 이들에게 높은 연봉은 큰 메리트가 없다. 이것은 배당과 주가의 상관관계를 참조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간단히 말해 회사가 (자신에게 주는 급여를 포함해) 돈을 많이 쓰는 것이 곧 자신의 주식 가치(회사의 성공 가능성)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founder 단위로 구성된 팀은 인건비로 높은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랬던 스타트업이 갑자기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려 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 회사가 너무나도 잘 되고 급작스러운 성장을 해서? 글쎄, 그런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이유는 단지 founder 단위에서 제품을 개발할 역량이 부족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펴 보면 이런 변화의 시작에는 founder가 떠났거나, founder의 실력에 문제가 있었거나, 너무 많은 일을 벌렸거나, 처음부터 founder 중에 개발자가 없었거나 기타 등등의 문제 상황이 있다. 이 시점에서 스타트업은 우수한 개발자를 고를 수 있는 ‘갑’이 아닌,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느라 바쁜 ‘을’이 된다. 모임에 나가면 어디 놀고 있는 우수한 개발자가 없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고, 잡코리아니 인크루트니 등의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뒤적거리게 된다.
전자를 통해 좋은 개발자가 합류하면 다행인데, 문제는 후자로 채용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잡코리아등의 구직사이트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우수한 개발자를 찾기 힘들다. 잡코리아에 이력서를 등록한 개발자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이미 어딘가에 고용되어, 리스트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트를 뒤적이고 면접을 계속 한 끝에 결국 적당한 능력은 겨우 있다고 판단되는, 그러나 높은 페이를 요구하는 개발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미 급한 상황이고, 누군가의 소개 없이/인연 없이 이루어진 만남은 더욱 갑에게 계산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결국 스타트업은 부족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채용을 한다. 이것이 “스타트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그래머”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필요한 사람을 얻었으니 다행일까? 앞서 말했듯이 그렇지가 않더라.
여기서 이렇게 고용한 프로그래머가 대개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보자.
만일 이 프로그래머가 그 스타트업의 미래가치와 비전에 큰 가중치를 두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높은 연봉보다는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요구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 성공할 경우 큰 금전적 보상이 주주에게 따라온다는 것을 우수한 개발자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회사의 입장에서 적정한 연봉을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과정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 없이 무조건적으로 높은 연봉을 택한다면 이들은 기업의 성패보다 급여액이라는 안전한 보상이 주요 관심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취직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굳이 스타트업에서 구직을 하는 상황이라면 그가 대기업에 취직/재취직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능력이 있어도 문제다. 급여 조건 때문에 스타트업을 온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있을 경우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직원이 그 조직에 퍼트리는 악영향은 때로는 치명적이다. 급여 차에서 오는 멤버들간의 괴리감과 그 해소에 대한 비용, 보신주의 문화, 기타 등등. 그나마 자신의 역할을 해주는 동안은 돈 값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그가 회사를 떠나면 스타트업은 많이 헝클어져 있기 십상이다.
그 때가 되서 “과연 그만한 돈을 주고 그를 고용할 가치가 있었느냐”를 물었을 때, 그렇다 라고 대답한 경영자는 드물었다. 그 프로그래머들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적정 연봉보다 천만원 가량이 높음에도 ‘따져보면 한달에 백만원도 안되는 정도의 추가 투자’라는 식으로 자신을 위안하며, 때로는 자신들이 개발자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회사라는 자부들까지 내심 했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founder들의 구성에 있다. 내가 지켜 본 위와 같은 상황을 맞이한 기업들 대부분이 프로그래머가 아닌 경영자를 두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자신들이 뜻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founder 들에게 부족한 시점에서 그 스타트업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투자가 필요 없는 기업이 투자를 잘 받듯 고용이 필요 없는 기업이 잘 고용할 수 있다.
설령 부득이하게 founder가 이탈하는 경우에도, 좋은 기업은 곧 좋은 사람들이 합류하게 된다. 여기서 ‘좋다’가 급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가 로켓에 타고 싶어하진 않지만, 로켓을 탈 사람이 없어 못 날아갈 로켓은 없다. 만일 우수한 프로그래머들이 돈 이외의 이유로는 스타트업에 합류하려 하지 않는다면, 급여로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서 SW분야 기업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는 사람이며, 그것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과장하자면 SW기업은 사람이 전부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적절치 않은 사람에게 과투자하고 휘둘리는 것은 SW기업의 전부를 잘못 운영하는 것이다. 급여는 비가역적이다. 한번 높아진 연봉은, 두고두고 그 회사의 짐이 된다. 실질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하물며 비용의 대부분이 인건비인 SW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내가 언급한 스타트업이란 단어를 정확히 정의하겠다. “자신의 제품으로 충분한 매출(혹은 사용자 규모)을 발생시키지 못한 약 10명 내외의 팀”이 그것이다. 카카오니 선데이토즈니 같은 회사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높은 급여”는 사람과 회사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다.
프로그래머를 두고 글을 썼지만 사실 어떤 직종이든 마찬가지다.
정 급하고, 많은 돈을 써서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 프리랜서나 파견직을 구해 회사에 앉혀놓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 founder에 준하는 사람을 계속 찾아야 한다.
글 : 이충엽
출처 : http://goo.gl/6H6sls
'Start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함께 나눌수록 더 커지는 마법]공유경제 (0) | 2015.03.17 |
---|---|
린 스타트업(4) - 가정에서 시작해서 확신으로 끝내기 (0) | 2015.03.14 |
린 스타트업(1) - Lean Startup 의 "Lean" 뭐지? Lean Startup (0) | 2015.03.11 |
[펌][DevOn 현장취재] 린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 (0) | 2015.03.11 |
린 스타트업(2) -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 (0) | 2015.03.08 |